[AZ] 바이에른에 위르겐 클롭 대신 위르겐 클린스만이 온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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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6060_imago3398915_artikelbild-1624w_1F6v73_wbhHlt.webp.ren.jpg [AZ] 바이에른에 위르겐 클롭 대신 위르겐 클린스만이 온 사연

 

2008년, CEO 칼 하인츠 루메니게와 회장 울리 회네스가 위르겐 클롭 영입에 대해 의견이 달랐고, 대신 누가 FC 바이에른에 합류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만약, 그리고, 아니면 하지만. 로타어 마테우스가 철학적으로 표현 했듯이 , "만약 만약과 하지만이 냄비와 프라이팬이라면.(Wäre, wäre, Fahrradkette)" 게르트 뮐러나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TSV 1860 뮌헨에 합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면 반대로, 1860의 우승 감독이자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막스 메르켈이 실제로 1979년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축구 역사에는 종종 전환점이 함께하며, 감독과 구단 경영진들은 특정 선수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 의사를 자주 표명한다. 이번 사례에서는 1월부터 레드불 GmbH의 글로벌 축구 책임자로 활동하며 라이프치히, 잘츠부르크 등을 아우르는 레드불 유니버스를 총괄하는 위르겐 클롭 에 대해 이야기다. 사람들은 클롭을 떠올리면 리버풀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떠올린다.

 

 

 

 

juergen-klopp-poehler-9h.jpg [AZ] 바이에른에 위르겐 클롭 대신 위르겐 클린스만이 온 사연

"푈러(Pöhler)" 라고 적힌 모자를 쓴 한 남자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연설했던 적이 있다. "나에게 '푈러'라는 단어는 도르트문트와 동의어다." 

 

루르 지역에서는 이 단어가 (길거리에서) 열심히 뛰는 축구 선수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감정적이고 대중의 주목을 받는 감독, 클롭이 "푈러"가 FC 바이에른에 적응하고 상류층 클럽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실현 가능했을까? 클롭과 바이에른의 결합은, 물론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었겠지만, 거의 현실이 될뻔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혼란스러웠던 2006/07 시즌 : 마가트의 끝, 히츠펠트의 복귀

 

2006/07 시즌은 혼란스러웠다. 펠릭스 마가트 감독은 2005년과 2006년 바이에른 뮌헨에서 두 번의 우승을 거머쥐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1월 말 경질되었다.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은 그의 지휘 아래 2005년과 2006년 모두 더블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리그에서 4위에 랭크되었다. 울리 회네스는 시즌을 살리기 위해 1998년부터 2004년까지 6년간 감독을 지낸 친구 오트마어 히츠펠트를 다시 설득했다. 회네스의 이 선택은 클럽 내부 분위기를 개선하는 데에만 성공했다.

 

 

결국 바이에른은 4위를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 하고, 프란츠 베켄바워가 말한 "패자들의 컵"에 출전해야 했다. 2007/08 시즌, 인기 스타였던 히츠펠트는 더블을 기록하며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작별을 고했다. (리그, 포칼 우승)

 

 

 

클린스만 선임이라는 폭탄이 터졌고, 그의 어머니는 "맙소사!"라고 말했다.

 

 

폭탄은 겨울 휴식기 동안 이미 터졌다. 구단은 아무런 유출이나 사전 발표 없이 2008년 1월 11일, 당시 43세였던 위르겐 클린스만이 국대에서 물러난지 2년 만에 클럽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독일 통신사(dpa)는 "7월 1일부터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이 세계적인 감독이 역대 최다 기록을 보유한 독일 축구 챔피언의 스타 선수들로 구성된 스쿼드를 이끌게 된다"라고 보도했다. 폭탄선언이자 쿠데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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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의 어머니 마르타조차도 크게 당황했다. "아니, 몰랐어. 세상에." 슈투트가르트 보트낭에 있는 자신의 빵집에서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

 

회네스, 클롭에 대해 "우리는 그가 FC 바이에른에 오는 데 동의했었다"

 

상황은 엄청나게 틀어졌다. 2009년 4월, 클린스만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구세주 임무를 맡은 유프 하인케스 감독이 그 자리를 대신 했다. 일이 이렇게 될 필요는 없었다. 훗날 2011년 1월, 회네스는 이렇게 설명했었다. "2008년 당시 위르겐 클린스만 대신 클롭 감독을 영입하고 싶었던 만큼, 내가 위르겐 클롭 감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 바이에른 뮌헨 회장은 칼 하인츠 루메니게 CEO의 설득으로 "클린스만 모험"에 나섰다. "우리는 이것이 큰 실수라는 것을 오랫동안 알고 있다." 라고 회네스는 말했다.

 

 

1626062_imago3825821_artikelbild-75proz-1280w_1F6v7D_rOyMWN.webp.ren.jpg [AZ] 바이에른에 위르겐 클롭 대신 위르겐 클린스만이 온 사연

2008년 7월 23일 : 바이에른과 도르트문트의 두 신임 감독이 대화하는 모습, 바이에른 뮌헨의 위르겐 클린스만(왼쪽)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위르겐 클롭. 클롭 감독은 마인츠에서 도르트문트로 막 이적한 상태였다. 만약 회네스 감독이 클럽 선임을 선택했다면, 그는 바이에른 뮌헨 유니폼을 입고 이 사진에 등장했을 것이다. 

 

 

회네스는 이후 클롭과의 관계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밝혔다. "우리는 그가 FC 바이에른으로 이적하는 데 합의했었다. 그가 마인츠를 떠났을 때( 2007/08 시즌 이후), 우리는 크리스마스 전에 그가 FC 바이에른으로 이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네, 상상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었다."

 

루메니게 : "클린스만 선임, 내게 일부 책임이 있다"

 
그러나 루메니게가 개입했고, 이것이 전환점이었다. 회네스에 따르면, 루메니게는 "위르겐 클린스만 영입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클린스만이 우승을 거머쥐는 데 실패한 반면, 클롭은 리그 라이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여 2008년부터 2015년까지 BVB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2011년과 2012년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루메니게는 이후 책임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위르겐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부임시킨 데에는 나에게 책임이 일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양측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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