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윈 더 스틱스] 역대 최고의 아시아 골키퍼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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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역대 최고의 골키퍼 Top 10
골키퍼들은 팀 및 개인 수상 경력, 선수 생활의 지속성, 활약한 리그의 수준, 전성기의 퍼포먼스, 그리고 통계적 성과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해 순위가 매겨졌다.
또한 골키퍼는 출생 국가가 아니라 ‘대표로 뛴 국가’를 기준으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스테브 망당다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국가대표로 뛰기 때문에 유럽 골키퍼로 간주된다.
10. 아메르 샤피 (요르단, 알 야르무크/알 웨흐다트, 199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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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요르단 국가대표인 그는 1999년 알 야르무크에서 10대의 나이에 프로 데뷔를 했다. 이어 2002년에는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으며,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20세였다.
그 이후 샤피는 중동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그는 요르단 대표팀에서 거의 171경기에 출전했으며, 네 번의 아시안컵에 참가했다. 또한 자국의 양대 명문 구단인 알 파이살리와 알 웨흐다트에서 모두 활약했다. 특히 알 웨흐다트 소속으로 요르단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7차례 차지했으며, 가장 최근 우승은 2018년이었다.
키가 183cm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인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골키퍼다. 공격 가담도 마다하지 않으며, 유소년 시절에는 미드필더로 데뷔했다. 2018년 인도와의 친선 경기에서는 장거리 슛으로 득점까지 기록했다.
9. 나라자키 세이고 (일본, 요코하마 플뤼겔스/나고야 그램퍼스, 199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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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구의 전설인 나라자키 세이고는 23년 선수 커리어 거의 전부를 일본 J1리그에서 보냈다(2부 리그에서 한 시즌 제외). 그는 리그 역사상 세 개의 다른 10년대에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유일한 골키퍼이며, 2010년에는 리그 MVP를 수상한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골키퍼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일본 최정상급 빅 팀에서 뛰지는 않았다. 첫 4시즌은 요코하마 플뤼겔스에서 보냈고, 1998년 천황배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마지막 19시즌은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활약했고, 2010년에 자신의 첫이자 유일한 J1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 일본 대표팀에서 77경기에 출전했지만, 대부분 가와구치 요시카쓰의 백업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본이 공동 개최한 2002 월드컵에서는 네 경기 모두 선발로 나서며, 일본을 사상 처음으로 토너먼트 진출로 이끌었다.
8. 가와구치 요시카쓰 (일본, 요코하마 F. 마리노스/주빌로 이와타, 199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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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도 피욜 vs 우고 가티, 조제프앙투안 벨 vs 토마스 은코노처럼, 일본 골키퍼의 아이콘인 가와구치 요시카쓰와 나라자키 세이고 사이에도 항상 ‘누가 더 뛰어난가?’라는 논쟁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리스트에서는 가와구치가 근소하게 앞선다.
가와구치는 1995년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 당시 19세였던 그는 데뷔 시즌에 J1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신인왕에도 올랐다. 그는 커리어 전부를 일본에서 보내지 않았으며, 잉글랜드와 덴마크에서도 활약했다. 그러나 J1리그 20주년 기념 팀에 유일한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국가대표로 116경기에 출전한 그는 일본 역사상 최다 출전 골키퍼다. 2000년과 2004년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고, 2004년 대회에서는 올스타 XI에도 선정됐다. 또한 일본이 결승까지 진출한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베스트11에도 포함되었다.
7. 마크 보스니치 (호주, 아스톤 빌라, 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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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부터 1999년까지 마크 보스니치는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이었다. 아스톤 빌라에서 8시즌을 보내며, 그중 5시즌은 20경기 이상 출전했고, 풋볼 리그컵 두 차례 우승과 함께 팀을 리그 2위까지 이끌었다.
같은 기간 그는 호주 대표팀을 1997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으로 이끌었고, IFFHS으로부터 오세아니아 세기의 골키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알렉스 퍼거슨 경은 1999년 피터 슈마이켈의 후계자로 그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영입했다. 이는 맨유에서의 두 번째 입단이었다. 그러나 보스니치는 단 한 시즌만 주전으로 뛰었고, 불안정한 경기력으로 자리를 잃었다.
그는 논란으로도 기억된다. 나치식 경례로 FA 벌금을 받았고, 2000년대 중반에는 주당 $5,000에 달하는 코카인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순수한 축구 실력만 놓고 보면, 전성기의 보스니치는 분명 뛰어난 골키퍼였다.
6. 알리 알 합시 (오만, 레딩/위건 애슬레틱, 199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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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알 합시는 많은 프리미어 리그 팬들에게 아랍 골키퍼의 상징 같은 존재다. 그는 커리어 상당 부분을 잉글랜드에서 보냈으며, 볼턴 원더러스, 위건 애슬레틱,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레딩, 웨스트 브롬 등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그는 특히 위건과 레딩에서의 활약으로 유명하다. 2010/11시즌, 위건 입단 첫해에 구단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페널티킥을 약 50% 가까이 막아내며, 뛰어난 페널티 선방으로 명성을 쌓았다. 2015년 레딩으로 이적한 뒤에도 2015/16, 2016/17 두 시즌 연속 구단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다.
오만 팬들의 큰 사랑을 받은 그는 국가대표로 136경기에 출전했고, 걸프컵 결승에 세 차례 진출했으며, 2009년에는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걸프컵에서 다섯 번이나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됐다.
5. 초우 치 케옹 (말레이시아, 사우스 차이나, 1965~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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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후반에 태어난 초우 치 케옹은 어린 시절부터 위대한 선수가 될 운명이었다. 그는 1963년, 13세의 나이로 말레이시아 U-20 대표팀 데뷔를 했고, 2년 뒤 15세에 성인 대표팀 데뷔까지 치렀다.
그의 재능은 빠르게 아시아 전역의 주목을 받았다. 1966년부터 1970년까지 5년 연속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로 공식 인정받았다. 이후 말레이시아 화교 선발 팀과 함께 홍콩을 순회하며, 여러 홍콩 구단들로부터 기록적인 연봉 제안을 받았다.
한때는 브라질의 강호 크루제이루 이스포르치 클루비로부터도 관심을 받았다.
1972년 크루제이루가 동아시아 투어 중 홍콩 리그 올스타와 경기를 치렀고, 초우 치 케옹이 골키퍼로 출전했다. 그는 3-0 패배 속에서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고, 이에 감명받은 크루제이루가 계약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절했다.
1년 뒤 그는 펠레의 산투스와 맞붙었고 2-0으로 패했지만, 펠레의 슛을 막아내는 놀라운 선방을 보여 브라질인의 존경을 받았다.
이 소식이 크루제이루에 전해졌고, 구단은 다시 영입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브라질 국적 취득을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그는 또다시 거절했다.
그가 비아시아 구단에서 뛴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7년과 1968년에는 잉글랜드의 베드포드 타운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브라질 구단으로의 이적은 분명 가장 큰 무대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대륙 간 이적이 일반적이지 않았고, 특히 아시아 골키퍼 대부분은 국내에서만 뛰었다. 그런 시대에 브라질 구단이 계약을 제안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의미였다.
그는 1985년에 은퇴했다.
4. 이운재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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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재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청주 출신인 그는 199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프로 데뷔했고, 이후 16시즌 동안 410경기 출전과 140회의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수원에서 그는 K리그1 우승 4회, 리그컵 우승 4회를 차지했다. 또한 K리그1 베스트 XI에 네 차례 선정됐으며, 2001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도 경험했다.
그는 특히 페널티킥 방어에 능했다. 2010년 기준 통계에 따르면, K리그에서 약 45%의 페널티를 막아냈으며, 승부차기에서는 12번 중 11번을 승리해 약 92%의 승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스페인 팬들은 그를 페널티킥으로 이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2002 월드컵 8강전 승부차기에서 그는 호아킨의 킥을 막아냈고, 이는 곧 홍명보의 결승 골로 이어졌다.
그는 국가대표로 130경기 이상 출전했으며, 53회의 클린시트를 기록해 약 44%의 무실점률을 보였다. 이 중 일부는 포르투갈, 스페인, 멕시코 같은 강팀을 상대로 나온 기록이다.
이운재는 주요 국가대항전 우승은 없었지만, 한국 축구의 상징적인 세대의 일원이었다. 그는 한국을 2002 월드컵 4위라는 아시아 최고 성적으로 이끌었고, 2000년과 2007년 아시안컵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또한 2007년 대회 베스트 팀에도 선정됐다.
그는 1994년과 2010 월드컵에 모두 출전한 단 두 명의 선수 중 한 명이며, 40세 생일을 앞두고 2012년에 은퇴했다.
3. 마크 슈워처 (호주, 미들즈브러/풀럼, 1990~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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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누군가에게 마크 슈워처가 훗날 호주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면, 아마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마크 보스니치는 커리어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1997년에는 호주를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으로 이끌고, 오세아니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반면, 슈워처는 디나모 드레스덴, FC 카이저슬라우테른, 브래드포드 시티에서 모두 실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대 최고의 호주 골키퍼’ 명단 맨 위에 젊은 마크, 즉 슈워처의 이름을 올린다.
슈워처의 커리어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1997년이었다. 미들즈브러 소속이 된 그는 리그 34경기에 출전했는데, 이는 프로 데뷔 후 그의 한 시즌 최다 리그 출전 기록이었다. 그의 활약은 1998년 구단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승격에 크게 기여했다.
1997/98시즌은 이후 16시즌 연속 잉글랜드 리그에서 20경기 이상 출전하는 기록의 시작이었다. 그중 14시즌에서는 30경기 이상을 뛰었고, 2012/13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36경기를 소화하며, 정점을 찍었다.
슈워처의 구단 커리어 최고의 순간은 2003/04시즌이었다. 그는 당시 개인 최다인 44경기(프리미어 리그 36경기 포함)에 출전했고, 미들즈브러는 리그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것은 슈워처가 주전 골키퍼로서 차지한 유일한 메이저 소속 팀 트로피였다.
소속 팀 출전이 늘어날수록 국가대표 출전도 함께 늘어났다. 1993년부터 2013년까지 그는 대표팀 109경기에 출전하며, 호주 최다 기록을 세웠고, 두 번의 월드컵과 두 번의 아시안컵에 참가했다. 여기에는 1974년 이후 첫 월드컵 출전이었던 2006 월드컵과, 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오른 2011 아시안컵도 포함된다.
슈워처는 2016년 레스터 시티에서 방출된 이후 프로 축구에서 은퇴했다.
2. 나세르 헤자지 (이란, 에스테그랄 테헤란, 1964~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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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르 헤자지는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임이 분명하다. IFFHS 회원들이 선정한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 순위에서 2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테헤란 출신인 그는 1964년, 14세의 나이에 아마추어 구단 나데르 FC에서 데뷔했다. 몇 년 뒤에는 타즈 테헤란(현재의 에스테그랄 FC)에서 18세의 나이로 프로 데뷔를 했다.
헤자지는 거의 즉시 성공을 맛봤다. 1970년 그는 타즈 테헤란을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끌었고, 결승에서 하포엘 텔아비브를 꺾으며, 이란 구단 최초의 대회 우승을 달성했다. 1년 뒤에는 개인과 구단 모두 첫 이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에스테그랄의 초창기 성공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을 뿐 아니라 국가대표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1972 올림픽과 1974 아시안게임(우승)에 참가했고, 1972년과 1976년 아시안컵 2연패를 이끌었다. 특히 1976년 대회에서는 네 경기 모두 무실점을 기록했다.
헤자지는 1978 월드컵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란은 조별리그에서 승점 1점으로 탈락했지만, 특히 스코틀랜드와의 1-1 무승부 경기에서 보여준 그의 활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관심을 끌었다. 대회 이후 그는 맨유 입단 테스트에 초청되었고, 당시 감독 데이브 섹스턴은 그의 기량에 깊은 인상을 받아 영입을 원했다.
하지만 이란 혁명 시기였던 탓에 계약 연장을 처리할 이란 축구 행정 담당자가 없어 이적은 무산되고 말았다.
헤자지는 방글라데시의 모하메단에서 짧게 뛴 뒤 1987년 은퇴했고, 곧바로 19년간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
1. 모하메드 알 데아예아 (사우디아라비아, 알 타이/알힐랄, 1989~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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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178경기에 출전한 모하메드 알 데아예아는 아시아 역사상 최다 출전 선수일 뿐 아니라, 축구 역사상 최다 국가대표 출전 골키퍼이기도 하다. 오직 잔루이지 부폰의 176경기만이 근접한 기록이다.
놀랍게도 알 데아예아는 단 13년 32일에 걸친 국가대표 커리어 동안 이 기록을 세웠다. 참고로 부폰은 20년 145일에 걸쳐 같은 수준의 기록을 쌓았다.
이는 알 데아예아가 얼마나 뛰어난 골키퍼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키가 크고 날씬한 체격의 사우디아라비아 골키퍼인 그는 1989년 고향 팀 알 타이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 원래는 핸드볼 선수였지만, 국가대표 골키퍼였던 형 압둘라의 권유로 축구로 전향했다. 이는 옳은 선택이었고, 그는 곧 1989년 U-17 월드컵에서 사우디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그는 소속 팀(알 타이, 그리고 알 힐랄)과 국가대표 모두에서 형의 뒤를 이어 주전이 되었다. 1993년, 형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지 3년 만에 국가대표 넘버원 골키퍼가 되었다.
소속 팀과 대표팀 모두에서 꾸준히 우승을 쌓아 올린 그는 사우디 프리미어리그와 크라운 프린스컵을 여러 차례 제패했다. 또한 대륙 무대도 지배했다. 2000년 AFC 챔피언스리그, 아시아 슈퍼컵, 아랍 컵위너스컵을 우승했고, 2001년 아랍 슈퍼컵, 2002년 아시안 컵위너스컵까지 차지했다.
사우디 대표로는 아시안컵 결승에 두 차례 출전해 1996년 우승을 차지했고, 1994년과 2003년 걸프컵에서도 우승했다. 또한 1994, 1998, 2002 월드컵에 참가했다.
꾸준함, 유연성, 그리고 발을 활용한 선방 능력으로 존경받았던 그는 1999년 IFFHS로부터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선외가작
아흐마드 레자 아베드자데 (이란): 에스테그랄과 페르세폴리스를 모두 대표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테헤란 더비에서 7승 6무로 무패 기록을 유지했다. 이란 리그 5회 우승,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회 우승을 차지했고, 1998 월드컵에서는 이란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하무드 술탄 (바레인): 바레인 국가대표 출신으로 24년 커리어 전체를 알 무하라크 SC에서만 뛰었다(1974~1998). 국가대표 100경기에 출전했고, 1994년 아시아 올해의 골키퍼로 선정되었으며, 걸프컵에서 세 차례 최고의 골키퍼로 인정받았다.
매튜 라이언 (호주): 2015 아시안컵에서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호주를 우승으로 이끈 것이 커리어 최고의 순간입니다. 호주와 벨기에 리그에서도 최고의 골키퍼 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33살이며, 커리어가 끝날 무렵에는 Top 10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터 탕가라지 (인도): 남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된다. 두 번의 올림픽, 세 번의 아시안게임, 두 번의 아시안컵에 참가했다. 1962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었으며, 그로부터 4년 전 아시아 올해의 골키퍼로도 선정됐다. 1967년 인도 스포츠 공로상인 아르주나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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