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투] 의외로 진짜인 믿기 힘든 축구 관련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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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놈만팬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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펍 퀴즈(Pub Quiz)에서 영웅이 될 수 있는, 축구 팬들도 잘 모르는 놀랍고 신기한 축구 상식들을 정리해주겠다.
업무 중 지루할 때나 화장심에서 가볍게 읽기 딱 좋은 흥미진진한 축구의 세계로 안내하겠다. 자, 안전벨트 꽉 매라!
축구에 관한 놀라운 사실 199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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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위스는 2006 월드컵에서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다. 스위스는 실점 없이 무실점으로 대회를 마쳤지만, 16강에서 우크라이나와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다. 수비만큼은 구멍 숭숭 뚫린 스위스 치즈와 달랐다는 걸 증명했다.
2. 네마냐 비디치는 성(Vidic) 전체가 로마 숫자로만 구성된 유일한 프리미어 리그 우승자이다. V는 5, I는 1, D는 500, C는 100을 의미한다.
3. 해리 케인의 월드컵 토너먼트(녹아웃 스테이지) 득점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 많다.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다.
4. 2010 월드컵에서 유일하게 무패를 기록한 팀은 뉴질랜드다. 뉴질랜드는 조별 예선에서 3무를 기록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우승국인 스페인은 첫 경기에서 스위스에 1-0으로 패하며, 대회를 시작한 바 있다. 재미있는 점은 스페인이 대회 7경기 동안 단 8골만 넣었으며, 토너먼트 모든 경기를 1-0으로 이겼다는 것이다.
5. 페르난도 토레스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주장이었다. 토레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아주 어린 나이에 주장 완장을 찼는데, 당시 선수 생활 말년이던 시메오네가 그의 팀 동료였다. 이후 시메오네는 감독으로 돌아와 토레스의 스승이 되기도 했다.
6. 영국 프로 구단 중 경기장이 육지에 있지 않은 곳은 딱 한 군데, 포츠머스의 프래턴 파크뿐이다. 포츠머스의 홈구장은 포트시 섬에 위치해 있다.
7. 스콧 파커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첫 4경기를 각각 다른 소속 팀 상태에서 치렀다. 2003년 데뷔전(찰턴 애슬레틱), 2004년(첼시), 2006년(뉴캐슬 유나이티드), 그리고 5년 만인 2011년(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 경기를 뛰었다.
8. 마리오 발로텔리의 프리미어 리그 통산 유일한 어시스트는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2011/12 시즌 극적인 우승 결정 골이었다. 패스를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타이밍은 없었겠네.
9. 스웨덴(SWE)과 덴마크(DEN)가 경기를 하면 TV 자막에 'SWE-DEN'이 뜬다. 남은 글자를 합치면 'DEN-MARK'가 된다. 폴란드(POL)와 안도라(AND) 경기도 비슷하다(POL-AND). 다음에 경기가 있다면 꼭 확인해 보라.
10.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는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에서 우승하던 시즌, 프리미어 리그보다 유럽 대항전에서 더 많은 승리를 거뒀다. 리그에서는 11승, 유럽에서는 12승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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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03년 인터 밀란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탈락했는데, 상대가 AC 밀란이었다. 같은 경기장을 공유하는 두 팀에게 원정 다득점을 적용한 기묘한 사례였다. 현재 UEFA는 이 규칙을 폐지했다.
12. 해리 케인의 '무관 저주'는 킹슬리 코망의 '우승 기록'보다 강했다. 코망은 커리어 내내 PSG,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에서 매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케인이 뮌헨에 합류하자마자 그 기록이 깨졌다.
13. 노르웨이는 브라질을 상대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4전 2승 2무를 기록 중이다. 브라질의 차기 감독 후보들도 긴장해야겠네.
14. 필립 람은 선수 시절 받은 옐로카드(26장)만큼이나 많은 트로피(22개)를 들어 올릴 뻔했다. 트로피 5개만 더 있었으면 완벽한 대칭이었겠지만, 여전히 경이로운 기록이다.
15. 1967년 울버햄튼, 스토크 시티, 선덜랜드는 미국 국내 리그에서 뛰었다. 당시 창설된 '유나이티드 사커 협회'가 유럽 팀들을 통째로 수입해 미국 연고 팀으로 뛰게 한 것이다. 울버햄튼은 LA 울브스, 스토크 시티는 클리블랜드 스토커스 등으로 이름을 바꿔 참가했고, 울버햄튼이 우승을 차지했다.
16. 앙투안 그리즈만은 라 리가 우승 경험이 없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라는 거함들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팀을 옮길 때마다 전 소속 팀이 우승하는 불운을 겪었다.
![의외로 진짜인 믿기 힘든 축구 관련 사실들 - 3.jpg [포포투] 의외로 진짜인 믿기 힘든 축구 관련 사실들](https://image.fmkorea.com/files/attach/new5/20260217/9499634856_340354_57e7a25a9e458477aafe08f99b8f5544.jpg.webp)
17. 역사적으로 머지 강(River Mersey)에서 가장 가까운 경기장은 에버튼이나 리버풀의 구장이 아니다. 항상 스톡포트 카운티의 엣질리 파크가 정답이었지만, 최근 힐 디킨슨 스타디움이 문을 열면서 2위로 밀려났다.
18. 독일 국가대표팀이 원정 유니폼으로 초록색을 입는 것은 아일랜드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친선 경기를 수락해 준 아일랜드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19. 스코틀랜드 팀인 머더웰은 (비공식)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우승한 적이 있다. 실제로 1927년 대회에 초청받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 비셴테 리사라수는 소속 팀과 국가대표팀 모두에서 세계 챔피언과 유럽 챔피언을 동시에 지낸 최초의 선수이다. 1998 월드컵, 유로 2000 우승에 이어 2001년 바이에른 뮌헨에서 챔피언스 리그와 인터컨티넨탈컵을 제패했다.
21. 주세페 베르고미는 월드컵에 4번이나 출전했지만, 지역 예선 경기는 단 한 번도 뛰지 않았다. 18세의 나이로 1982년 본선에 깜짝 발탁되었고, 1986년은 전 대회 우승국 자동 진출, 1990년은 개최국 자동 진출, 1998년은 명단 제외였다가 본선을 앞두고 극적으로 다시 소집되었기 때문이다.
22. 펠레는 선수로서 월드컵 3회 우승을 달성한 유일한 인물이다. 마리우 자갈루는 선수로서 2회, 감독으로 1회, 수석 코치로 1회 우승하며, 총 4번 우승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1998년에 우승했다면 5번이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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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006 월드컵은 프랑스가 1986년 이후 처음으로 자력 '통과'한 월드컵이다. 90년, 94년은 지역 예선 탈락했고 98년은 개최국, 02년은 전 대회 우승국 자격으로 자동 진출했기 때문이다.
24. 제임스 밀너는 챔피언스 리그 단일 시즌 최다 도움 기록을 루이스 피구와 공유하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 이것 말고는 별로 없을 것 같네.
25. 유로 2024 기준, 제르단 샤키리는 최근 3번의 유로 대회와 최근 3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골을 넣은 유일한 선수이다. 엄청난 꾸준함이지.
26. 아스날보다 찰턴 애슬레틱에서 뛴 발롱도르 수상자가 더 많다. 아스날은 발롱도르 수상자를 배출하거나 보유한 적이 없지만, 1977년 수상자인 알란 시몬센은 찰턴에서 한 시즌을 보냈다.
27. 베드란 촐루카는 유로 2008에서 경기를 뛰고도 카드를 받지 않았지만, 유로 2024에서는 경기를 뛰지 않고도 카드를 받았다. 크로아티아 대표팀 코치로 벤치에 앉아 있다가 심판에게 항의해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28. 에메르손 팔미에리는 챔피언스 리그, 슈퍼컵, 유로파 리그, 컨퍼런스 리그, 그리고 유로를 모두 우승한 유일한 선수이다. 앞의 세 개는 첼시에서, 컨퍼런스 리그는 웨스트햄에서, 유로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달성했다.
30. 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 주장을 맡았던 최근 두 명은 같은 중등학교 출신이다. 2006년의 데이비드 베컴과 2018, 2022년의 해리 케인은 모두 '칭포드 파운데이션 스쿨'을 다녔다.
31. 맷 버스비 경은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에서 모두 선수로 뛰었다. 맨유의 전설적인 감독인 그는 맨유의 최대 라이벌인 두 팀에서 도합 300경기 이상 출전한 후, 맨유의 감독이 되어 첫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끌었다.
32. 첼시는 유로파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했던 유일한 구단이다. 2012년 챔스 우승 후 다음 해 5월 15일에 유로파 우승을 차지했는데, 5월 25일에 새로운 챔스 결승이 열리기 전까지 열흘 동안 두 타이틀을 모두 가진 상태였다.
33. 1982년부터 모든 월드컵 결승전에는 최소 한 명 이상의 바이에른 뮌헨 선수가 출전했다. 2018년에는 코랑탱 톨리소가 벤치에 있었고, 당시 루카스 에르난데스는 뮌헨 이적 전이었다.
34. 헝가리 전설 페렌츠 푸스카스는 1962 월드컵에서 스페인 국가대표로 뛰었다. 당시엔 국적 변경이 허용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36. 1938년 맨체스터 시티는 리그 우승 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고도 강등당했다. 당시 아스날은 77골을 넣고 우승했지만, 시티는 80골을 넣고도 22개 팀 중 21위를 기록해 강등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37. 1935/36 시즌부터 2024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는 항상 맷 버스비 경이나 알렉스 퍼거슨 경 밑에서 뛰었던 선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조니 에반스가 그 기나긴 사슬의 마지막 고리였다.
38. 2015/16 시즌 스토크 시티 선수단 면면을 보면, 2004년부터 2024년까지 거의 모든 해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출전 경험자가 포함되어 있다. 호셀루가 2024년에 활약하며, 이 기록의 정점을 찍었다.
39.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한 최초의 잉글랜드인 감독은 알프 램지가 아니다. 조국 잉글랜드가 아닌 스웨덴을 이끌고 1958년 결승에 올랐던 조지 레이너가 그 주인공이다.
40. 바비 자모라와 오바페미 마틴스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오른발과 왼발로 모두 패널티킥 골을 넣은 유일한 두 선수다. 또한 티에리 앙리와 로베르 피레스는 패널티킥을 서로 패스하려 시도했던 유일한 두 선수로 남아 있다.
41. 리오 마부바는 공해(바다) 위에서 태어났다. 국제 수역의 배 위에서 태어나 출생 당시 국적이 없었으나, 프랑스에서 자라며, 2004년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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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스탬퍼드 브리지에 '셀러리'를 반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적발 시 영구 출입 금지 징계를 받을 수 있다. 2000년대에 셀러리와 관련된 19금 가사의 응원가가 유행하자 팬들이 경기장에 셀러리를 던지기 시작했고, 구단은 이를 즉시 불법화했다.
43. 오언 하그리브스는 영국에 거주한 적이 없음에도 잉글랜드 성인 국가대표팀에 뽑힌 유일한 선수다. 그는 캐나다에서 자랐고 웨일스 U19 대표팀에서 뛰었으며, 잉글랜드 대표팀의 첫 부름을 받았을 당시에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 중이었다.
44. 루카 모드리치와 마크 비두카는 사촌 지간이다. 비두카의 아버지 조(Joe)는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1960년대에 호주로 이민을 갔다.
45.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주장을 지낸 인물 중 세 명이 스컨소프 유나이티드를 거쳐 갔다. 케빈 키건, 레이 클레멘스, 그리고... 이언 보덤 경이다. 키건과 클레먼스는 스컨소프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리버풀로 이적했고, 전설적인 크리켓 주장인 보덤은 10대 시절 종목 고민 끝에 크리켓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1980~85년 사이 스컨소프에서 11경기를 뛰었다.
46. 곤살로 몬티엘은 한 시즌에 월드컵 결승과 유럽 대항전 결승에서 모두 승부차기 결승골을 넣은 유일한 선수이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카타르 월드컵 우승을 확정 지은 지 몇 달 후, 세비야 소속으로 유로파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의외로 진짜인 믿기 힘든 축구 관련 사실들 - 8.jpg [포포투] 의외로 진짜인 믿기 힘든 축구 관련 사실들](https://image.fmkorea.com/files/attach/new5/20260217/9499634856_340354_ba8bc9e15b6d7eeb2144cff52fcc7e2c.jpg.webp)
47. 첫 번째와 마지막 유러피언컵 우승 사이의 간격이 가장 긴 기록은 18년이다.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둘 다 1989년과 2007년), 그리고... 스콧 카슨(2005년과 2023년)이다. 재미있게도 카슨의 두 우승은 모두 같은 경기장(이스탄불 아타튀르크 스타디움)에서 이루어졌다.
4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트레블'을 달성한 시즌에 당한 패배 수는 아스날이 '무패 우승'을 달성한 시즌의 전체 패배 수보다 적다. 맨유는 트레블 시즌에 단 4패(리그 3패, 리그컵 1패)를 기록한 반면, 아스날은 무패 우승 시즌에 총 6패(리그컵 2패, 챔피언스 리그 3패, FA컵 1패)를 당했다.
49. 1930 월드컵 루마니아 대 페루 경기의 관중은 단 300명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후 열린 우루과이 대 루마니아 경기에는 8만 명의 관중이 몰렸다. 개최국이 우루과이였던 덕분이었겠지만, 루마니아 선수들에게는 정말 극과 극의 체험이었겠다.
50. 세르히오 아구에로는 2012년 QPR과의 홈 경기에서 퇴장당한 적이 있다. 잘못 본 게 아니다. 그 전설적인 역전 우승골을 넣은 후 상의 탈의 세리머니를 하다가 두 번째 경고를 받고 퇴장당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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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첼트넘 타운은 FA컵 참가 신청을 잊어버린 적이 있다. 1974년, 서류 제출을 깜빡하는 바람에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 그해 케빈 키건이 결승에서 멀티골을 넣으며 우승했는데, 첼트넘이 나갔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52. 보카 주니어스의 유니폼 색깔은 스웨덴에서 왔다. 전설에 따르면, 1906년, 보카는 유니폼 색이 비슷한 팀과 경기를 치러 진 팀이 색깔을 바꾸기로 했다. 경기에서 진 보카는 라 보카 항구에 처음 들어오는 배의 국기 색을 따르기로 했는데, 그 배가 바로 스웨덴 배였다고 한다. 그래서 보카는 지금까지 청색과 황색을 입는다.
53. 흐로닝언은 1971년 승격 당시 시즌 전체에서 단 7골만 실점했다. 이 7골은 모두 다른 7경기에서 나왔는데, 놀랍게도 흐로닝언은 그해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고 2위에 머물렀다.
54. 포츠머스는 무려 7년 동안 FA컵 챔피언 자리를 유지한 기록이 있다. 1939년에 우승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으로 모든 프로 축구가 중단되면서 다음 대회가 열릴 때까지 트로피를 반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이탈리아도 1934년부터 1950년까지 16년 동안 월드컵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55. 1979년 페루자는 '리그 무패'를 기록하고도 우승하지 못했다. 11승 19무를 기록하며, 무패 행진을 달렸지만, 3패를 기록한 AC 밀란에 밀려 2위를 차지했다.
56. 제임스 밀너는 1933년생 감독(바비 롭슨)과 1993년생 감독(파비안 휘르첼러) 밑에서 모두 뛰어본 선수이다. 그의 커리어가 얼마나 긴지 보여주는 대목.
58. 아스날은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원정 경기 무패'를 두 번이나 달성한 유일한 구단이다. 2003/04 '무패 우승' 시즌은 당연하고, 그 2년 전인 2001/02 '더블' 시즌에도 원정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59. 파트릭 클라위버르트와 뤼트 판니스텔로이는 정확히 같은 날(1976년 7월 1일) 태어났지만, 커리어의 정점은 완전히 엇갈렸다. 클라위버르트는 1995년에 이미 챔스 결승골을 넣으며, 스타가 되었고 2000년 이전에 전성기를 누렸지만, 판니스텔로이는 2001년 맨유 입단 후에야 전성기를 맞았다. 두 선수의 전성기가 너무 달라서 같은 나이임에도 커리어가 겹치는 느낌이 거의 없다.
60. 카를로 안첼로티는 유럽 5대 리그를 모두 우승한 유일한 감독이다. 세리에 A(밀란), 프리미어 리그(첼시), 리그 1(PSG), 라 리가(레알 마드리드), 분데스리가(바이에른)를 모두 정복했다.
![의외로 진짜인 믿기 힘든 축구 관련 사실들 - 11.webp [포포투] 의외로 진짜인 믿기 힘든 축구 관련 사실들](https://image.fmkorea.com/files/attach/new5/20260217/9499634856_340354_ef1e87dad1c7ae9b991bd530b4536f36.webp)
61. 유로 2000 결승전에 출전했던 프랑스 선수 중 10명이 프랑스 역대 최다 출전 기록 12위 안에 들어 있다. 튀람, 앙리, 드사이, 지단, 비에이라, 데샹, 블랑, 리사라수, 윌토르, 바르테즈가 그 주인공들이다. 진정한 황금세대였다.
62. 사무엘 에투는 2009년(바르셀로나)과 2010년(인터 밀란)에 서로 다른 팀에서 2년 연속 '트레블'을 달성했다. 2009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의 트레이드로 팀을 옮겼는데, 결과적으로 에투가 완벽한 승자가 되었다.
63. '힙합의 대부'라 불리는 미국의 시인 겸 음악가 길 스콧 헤론의 아버지는 셀틱 역사상 첫 번째 흑인 선수였다. 자메이카 출신 공격수였던 길 헤론은 1950년대에 셀틱에서 활약했다.
64. 1998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호주는 단 한 경기도 지지 않고도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예선 모든 경기를 이기고 뉴질랜드까지 꺾었지만, 마지막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이란을 만나 홈(2-2), 원정(1-1) 모두 비기며,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탈락했다. 정말 불운했지.
65. FA컵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넣은 팀은 토트넘이 아니라 케터링 타운이다. 그들은 총 927골을 기록해 토트넘을 제치고 1위에 올라 있다.
66. 라이언 긱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뛴 24년(963경기) 동안 단 한 번도 퇴장당한 적이 없다. 하지만 웨일스 국가대표팀에서는 딱 한 번 퇴장당한 기록이 있다.
67. 펩 과르디올라가 이전 팀에서 지도했던 제자를 다시 영입한 사례는 단 한 명, 티아고 알칸타라뿐이다. (사례 추가: 2024년 일카이 귄도안이 바르셀로나에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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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스테판 슈바르츠가 선덜랜드에 입단할 당시, 계약서에는 '우주 여행 금지' 조항이 있었다. 당시 슈바르츠가 우주 관광에 관심을 보이자, 구단 측은 스타 플레이어를 지구 밖으로 잃고 싶지 않아 이 이색적인 조항을 넣었다.
69. 케빈 더 브라위너는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실력을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사실이다.
70. 1941년 라피드 빈(오스트리아 팀)이 독일 챔피언에 오른 적이 있다. 나치 독일 시절 독일 리그에 통합되어 우승한 기록인데, 이 덕분에 라피드 빈은 최근 레버쿠젠의 우승 전까지 레버쿠젠보다 독일 리그 우승 횟수가 더 많았다.
71. 1968 유로 준결승전은 '동전 던지기'로 승자가 결정되었다. 이탈리아와 소련이 비기자 동전 던지기를 했고, 이탈리아가 이겨 결승에 올라 우승까지 차지했다.
72. 잉글랜드 프로 리그 팀 중 'Hull City'는 글자 안에 색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는 유일한 이름이다. H, U, L, L, C, I, T, Y 중 폐쇄된 곡선(색칠할 수 있는 구멍)이 있는 글자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73. 비제프 우치는 21세기 들어 2부 리그 우승 타이틀을 '방어'한 유일한 구단이다. 2007/08 시즌 우승 후 승격했으나 부패 스캔들로 곧바로 강등당했고, 이듬해인 2008/09 시즌에 다시 우승하며, 2년 연속 2부 리그 챔피언이 되었다.
74. 챔피언스 리그 개편 전, 서로 다른 두 개의 잉글랜드 구단 소속으로 유러피언컵 우승 메달을 딴 유일한 선수는 지미 리머다. 1968년 맨유 우승 당시 벤치에 있었고, 1982년 아스톤 빌라 우승 당시에는 선발로 뛰다가 9분 만에 부상으로 교체되었다.
75. 2003년 프란츠 베켄바워는 바이에른 뮌헨을 이탈리아 리그(세리에 A)로 옮기겠다고 독일 리그를 협박한 적이 있다. 분데스리가 사무국이 뮌헨의 재정 문제를 계속 걸고넘어지자 "계속 잔소리하면 유벤투스, 밀란이랑 경기하러 가버리겠다,"라고 선언한 것이었다.
76. 가레스 베일이 토트넘을 떠난 후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 시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토트넘으로 임대 복귀했던 바로 그 시즌이었다.
77. 골키퍼 한스외르크 부트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3골을 넣었는데, 모두 유벤투스를 상대로 다른 세 팀에서 넣은 페널티킥이었다. 2000년에는 함부르크 소속으로 에드윈 반 데르 사르를 상대로, 2001년에는 레버쿠젠 소속으로, 2009년에는 35세의 나이에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잔루이지 부폰을 상대로 골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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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은 공식 경기에서 질링엄을 이겨본 적이 없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성공한 두 팀이지만, '강팀' 질링엄 앞에서는 작아졌다. 반면 맨체스터 시티는 조지 웨아의 활약 덕분에 이겨본 적이 있다.
79. 애버딘의 홈구장인 '피토드리(Pittodrie)'는 게일어로 '똥 더미(shitheap)'라는 뜻이다. 이보다 더 스코틀랜드다운 이름이 있을까?
80. 2010/11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흔한 이름은 '데이비드(David)'와 '제임스(James)'였다. 우연히도 이 시즌은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데이비드 제임스(David James)라는 이름의 선수가 뛰지 않은 첫 시즌이기도 했다.
81. 구(舊)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마지막으로 웨일스어를 사용해 골을 넣은 사람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라는 소문이 있다. 사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흥미로운 도시 전설이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역에는 1865년 이주한 웨일스인 공동체가 여전히 남아 있는데, 바티스투타가 그쪽 혈통이라 웨일스어를 할 줄 안다는 설이다. 90년대 후반 피오렌티나 소속으로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었을 때 이 기록이 세워졌다는 이야기다.
82.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성인 무대 데뷔전은 소속 팀 리버 플레이트가 아니라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경기였다. 소속 팀이 그를 데뷔시키기도 전에 국가대표팀이 먼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부른 것이다.
83. 로버트 언쇼는 잉글랜드 프로 리그 전 단계(1~4부), 리그컵, FA컵, 그리고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모두 해트트릭을 기록한 유일한 축구선수다. 2000년 FA컵을 시작으로 2005년 웨스트브롬 소속으로 프리미어 리그 해트트릭을 완성하며, 이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웠다.
84.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전 세계의 수많은 '더비 매치'에서 골을 넣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데어 클라시커', 이탈리아의 '밀라노 더비'와 '이탈리아 더비', 스페인의 '엘 클라시코', 프랑스의 '르 클라시크',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더비'와 '노스웨스트 더비', 미국의 '엘 트라피코'까지 모두 섭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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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던디 유나이티드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승률 100%'를 자랑한다. 유럽 대항전에서 총 4번 만나 4전 전승을 거뒀다.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7골을 넣는 동안 단 2골만 내주며, 완벽하게 제압했다.
86. 남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우승한 팀은 단 한 팀뿐이다. 구단 축구에서는 흔한 색이지만, 월드컵 역사에서는 1966년의 잉글랜드만이 유일하게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87. '실버골'로 승부가 갈린 두 경기에 모두 참여한 유일한 선수는 토마시 갈라세크다. 국제 대회 유일의 실버골은 유로 2004 준결승전(그리스 vs 체코)에서 나왔고, 구단 대항전 유일의 실버골은 챔피언스 리그 예선(아약스 vs GAK)에서 나왔는데 갈라세크는 두 경기 모두 뛰었다.
88. 지구상의 모든 6개 대륙(FIFA 산하 연맹)에서 프로 선수로 뛴 유일한 선수는 루츠 파넨스티엘이다. 이 독일 골키퍼는 말레이시아, 잉글랜드, 뉴질랜드, 브라질, 남아공 등 전 세계 25개 구단을 거친 진정한 '저니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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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이적료 세계 최고 기록이 이탈리아, 잉글랜드, 스페인 이외의 리그에서 깨진 적은 단 3번뿐이다. 최근의 파리 생제르맹(네이마르)을 제외하면, 1932년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와 1922년 스코틀랜드의 폴커크가 그 주인공이다.
90. 코번트리 시티는 1970년부터 2018년 사이 무려 48년 동안 어떤 리그에서도 6위 이내에 들어본 적이 없다. 수십 년 동안 아슬아슬하게 상위권 진입에 실패하는 고통스러운 역사를 겪었다.
91. 아스날의 주장은 전통적으로 그 경기에서 팀 전체가 입을 유니폼의 '소매 길이'를 결정한다. 과거 토니 애덤스는 짧은 소매를 선호했고, 앙리나 비에이라는 긴 소매를 선호했다. 다만 요즘은 마르틴 외데고르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각자 원하는 길이를 입는 선수들도 많아진 모양이다.
92. 1996년, 아이두르 구드욘센은 아버지 아르누르 구드욘센과 교체되어 경기장에 들어갔다. 이는 국제 경기 역사상 아버지가 아들로 교체된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다. 당시 아버지는 34세, 아들은 1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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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존 오비 미켈의 원래 이름은 '마이클(Michael)'이었지만, 오타 때문에 이름이 바뀌었다. 2003년 청소년 월드컵 등록 당시 나이지리아 축구협회 직원이 실수로 'Mikel'이라고 적어냈고, 미켈 본인이 이 이름의 어감이 마음에 들어 그대로 쓰기로 했다고 한다.
94. 스티브 피넌은 월드컵, 챔피언스 리그, UEFA컵, 그리고 잉글랜드 리그의 1~5부 리그를 모두 경험한 유일한 선수이다. 논리그에서 시작해 월드컵 무대와 유럽 정상까지 밟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95. 축구 역사상 등번호가 처음 도입된 주요 경기에서 양 팀이 1~11번을 나눠 가진 것이 아니었다. 1933년 FA컵 결승에서 에버튼은 1~11번을, 상대 팀인 맨체스터 시티는 12~22번을 달고 뛰었다.
96. 2008년 카가와 신지의 일본 대표팀 데뷔전(코트디부아르전)에 출전했던 모든 선수는 1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프로 선수로 활동했다. 참고로 카가와 신지는 (현재 2026년 기준) 37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이다.
97. 로이 호지슨은 과거 학교 교사였다. 감독이 되기 전, 그는 학교에서 영어와 체육을 가르쳤다.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교실에 들어와 영어 수업을 진행하곤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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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리즈 유나이티드의 전설 루카스 라데베는 원래 다른 선수를 달래기 위한 '덤'으로 영입된 선수였다. 리즈는 필리몬 마싱가를 영입하면서 그의 적응을 돕기 위해 남아공 동료인 라데베를 함께 데려왔는데, 결과적으로 라데베가 훨씬 더 성공적인 영입이 되었다.
99. 1950 월드컵에는 공식적인 '결승전'이 없었다. 당시 대회 방식은 최종 단계가 조별 리그 형식이었기 때문에, 우루과이와 브라질의 마지막 경기가 사실상의 결승전 역할을 했을 뿐 공식 명칭은 결승전이 아니었다.
100. 2014년 첼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0-0)에서는 첼시 소속 골키퍼 3명이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첼시의 페트르 체흐가 부상으로 나가고 마크 슈워처가 들어와 무실점을 기록했으며, 상대 팀 아틀레티코의 골문을 지킨 티보 쿠르투아 역시 당시 첼시에서 임대된 신분이었다.
101. 페예노르트의 前 골키퍼 로날트 흐라플란트는 구단 입단 후 리그 데뷔전을 치르기까지 무려 18년을 기다렸다. 90년대 후반 유스 팀에서 시작해 2000년에 팀을 떠났다가 2011년에 복귀한 그는, 2013/14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34세의 나이로 마침내 데뷔했다. 하지만 교체 투입 15분 만에 동점골을 허용하며, 무실점 데뷔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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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데이비드 베컴과 데이비드 모예스는 한때 팀 동료였다. 모예스가 프레스턴 노스 엔드에서 뛰던 1994/95 시즌, 당시 맨유 유망주였던 베컴이 그곳으로 임대를 오면서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다.
103. 올드 트래포드 역사상 최다 관중 기록은 맨유 경기가 아니다. 1939년 3월 25일, 울버햄튼과 그림즈비 타운의 FA컵 준결승전에 몰린 76,962명이 역대 최고 기록이다. '꿈의 구장' 주인인 맨유조차 아직 이 기록을 깨지 못했다.
104. 월드컵 역사상 '첫 해트트릭'과 '첫 클린시트'의 주인공은 모두 미국인이다. 1930년 첫 대회에서 골키퍼 지미 더글러스가 벨기에를 상대로 첫 무실점 경기를 기록했고, 나흘 뒤 버트 파테노드가 파라과이를 상대로 첫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105. 잉글랜드 프로 구단 중 이름에 지명이 들어가지 않은 팀은 '아스날'과 '포트 베일'뿐이다. 아스날은 원래 '울위치 아스날'이었으나, 연고지 이전 후 지명을 뺐고, 포트 베일은 특정 도시가 아닌 운하의 계곡(Valley of ports)을 뜻하는 이름이다. 실제 연고지는 스토크온트렌트의 버슬럼이다.
106. 레딩 FC는 이론상 모든 경기에서 홈 유니폼을 입을 권리가 있다. 레딩이 위치한 버크셔주가 '왕실 자치주'이기 때문이라는 설인데, 이 이론대로라면 원정 경기에서도 상대 팀에게 원정 유니폼을 입으라고 '왕실의 명'으로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레딩 측도 "오래된 루머라 실제 가능한지는 확인해보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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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브루나이 국가대표팀은 과거 말레이시아 축구 '리그'에 참가해 우승한 적이 있다. 1999년, 국가대표팀 자격으로 말레이시아 컵 대회에 초청받아 출전했다가 덜컥 우승을 차지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108. 프랑스는 월드컵에서 '해외 원정 무승' 기록을 20년 동안 이어간 적이 있다. 1986년 벨기에전 승리 이후, 90/94년 지역 예선 탈락, 98년 홈 우승, 2002년 한일 월드컵 무승 탈락을 거치며, 2006년 토고를 이길 때까지 타국 땅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109. 앨빈 마틴은 한 경기에서 '세 명의 다른 골키퍼'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웨스트햄의 수비수였던 그는 뉴캐슬전에서 주전 키퍼, 부상으로 대신 들어온 미드필더, 그리고 마지막으로 골문을 지킨 공격수 피터 비어즐리를 상대로 각각 한 골씩 넣어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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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FA컵 3연패를 달성한 마지막 팀은 1880년대에 나왔다. 블랙번 로버스가 1884년부터 1886년까지 달성한 이후, 140년 가까이 누구도 이 기록에 도달하지 못했다.
111. 아스날은 한때 풀럼, 첼시, 토트넘과 합병될 뻔했다. 1908~1910년 사이 심각한 재정난을 겪을 당시 다른 팀들이 흡수 제안을 했었던 것이다. 결국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가 아스날 주식 두 주를 사주며, 동맹을 맺었고, 꾸준한 친선 경기 수익으로 아스날은 파산을 면할 수 있었다.
112. 글래스고 연고의 스코틀랜드 팀 '퀸즈 파크 FC'는 잉글랜드 FA컵 결승에 두 번 진출했다. 1887년 스코틀랜드 축구협회가 금지하기 전까지 스코틀랜드 팀들도 잉글랜드 FA컵에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13. 통일 독일 탄생 이후 태어난 첫 두 선수가 월드컵 우승 결승골을 합작했다. 마리오 괴체와 안드레 쉬를레는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태어난 선수 중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되었는데, 2014년 결승전에서 쉬를레의 도움을 받아 괴체가 우승골을 넣었다.
114. 서로 다른 3개의 구단 소속으로 유러피언컵 결승에 진출한 선수는 딱 두 명이다. 클라렌스 세도르프(아약스, 레알, 밀란 - 모두 우승)와 파트리스 에브라(모나코, 맨유, 유벤투스)다. 안타깝게도 에브라는 맨유 시절 한 번을 제외하면 결승에서 바르셀로나에만 세 번 패하며, 준우승 전문이 되었다.
115. 토마스 뮐러는 월드컵에서 10골을 넣었지만, 유로 대회에서는 통산 0골이다. 자칭 '라움도이터(공간 해석자)'인 그는 유로 2008부터 2024까지 16경기를 뛰었지만,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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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AC 밀란은 1993/94 시즌 리그에서 단 36골만 넣고도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34경기에서 단 15실점만 기록한 '짠물 수비' 덕분이었는데, 같은 시즌 강등권 팀들보다도 득점이 적었음에도 챔피언이 되었다.
117. 은골로 캉테는 한 시즌에 선발 출전한 첫 4경기를 모두 다른 감독 밑에서 치렀다. 2022/23 시즌, 투헬 하에서 시작해 부상 복귀 후 포터, 살토르(대행), 램파드 체제에서 각각 첫 선발 경기를 소화했다.
118.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요크셔 출신 인물은 제이미 바디와... 엘링 홀란드뿐이다. 홀란드는 아버지가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시절, 요크셔의 리즈에서 태어났다.
119. 파올로 말디니는 아버지가 잉글랜드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지 정확히 40년 만에 같은 업적을 달성했다. 1963년 웸블리에서 체사레 말디니가 주장으로 밀란의 우승을 이끌었고, 2003년 올드 트래포드에서 아들 파올로가 주장으로 밀란의 챔스 우승을 확정 지었다.
120. 미하엘 발락은 '준우승'의 아이콘이다. 2002년(챔스, 분데스리가, 포칼, 월드컵)과 2008년(챔스, 프리미어 리그, 리그컵, 유로)에 각각 4개 대회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하는 지독한 불운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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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2004/05 시즌, 골키퍼인 호제리우 세니는 호나우지뉴보다 더 많은 골을 넣었다. 세니는 프리킥과 페널티킥을 전담하며, 웬만한 공격수보다 나은 득점력을 뽐냈다.
122.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은 승부차기에서 100% 승률을 기록 중이며, 단 한 번도 실축한 적이 없다. 승부차기에서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팀이다.
123. 1950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침몰시킨 미국 선수는 사실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었다. 결승골의 주인공 조 게이젠스는 뉴욕에서 접시닦이로 일하던 아이티 국적자였으며, 나중에 아이티 국가대표로도 뛰었다.
124.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뮌헨 참사 직후 맨유 임대 이적이 거의 확실시되었으나, 잉글랜드 축구협회(FA)가 이를 막았다. 레알 마드리드도 동의한 훈훈한 지원이었지만, FA는 '영국 선수의 성장을 저해한다'라는 이유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맨유에서 뛰는 것을 불허했다.
125.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처음으로 직접 관람한 축구 경기는 1953년 FA컵 결승전이었다. 첫 경기부터 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를 직관하였던 그녀였다.
126. 앙투안 그리즈만의 자녀 세 명은 태어난 연도는 다르지만 생일이 모두 '4월 8일'로 똑같다. 넷째인 샤이가 이 패턴을 깼지만,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같은 생일을 공유한다.
127. 존 테리가 첼시에서 넣은 프리미어 리그 골 수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바르셀로나에서 넣은 라 리가 골 수보다 많다. 테리는 수비수임에도 42골을 넣었고, 미드필더인 이니에스타는 35골을 기록했다.
128. 호나우두(R9)는 2002 월드컵 골든볼(MVP급 활약)을 수상하기 전 3년 동안 소속 팀에서 뛴 경기가 단 26경기뿐이었다. 큰 부상을 겪고도 돌아오자마자 세계를 정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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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노팅엄 포레스트는 자국 리그 우승 횟수보다 유럽 챔피언 우승 횟수가 더 많은 유일한 팀이다. 1978년 리그 우승 후 진출한 유러피언컵에서 1979년, 1980년 2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있는데, 유러피언컵 우승팀 중 최초로 3부 리그까지 강등된 경험이 있다.
130. 피츠 홀은 10대 시절 영화 《제5원소》에 출연했다. '원 사이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는 크리스탈 팰리스 등에서 활약하기 전, 1997년 뤼크 베송 감독의 영화 도입부에 등장했다. 참고로 프랑스의 전설 프랑크 르뵈프도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의사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131. 챔피언스 리그 개편 전, 한 도시에서 두 팀이 유러피언컵 준결승에 진출한 기록을 두 번이나 가진 나라는 스코틀랜드뿐이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시티)나 런던(첼시, 아스날)보다 훨씬 앞서 글래스고(레인저스, 셀틱)와 던디(던디 FC, 던디 유나이티드)가 이 기록을 세웠다.
132. 카렌 브래디는 버밍엄 시티 이사로 재직할 당시, 現 남편인 폴 페스치솔리도를 스토크 시티에 £400,000에 팔아버렸다. 팔기 전에 집에서 미리 상의를 했을지 궁금하네.
133. 뤼트 판니스텔로이가 맨유에서 넣은 150골 중 페널티 박스 밖에서 넣은 골은 단 1골뿐이다. 찰턴 애슬레틱을 상대로 기록했는데, 그의 엄청난 '박스 안 타격 능력'과 일관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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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AC 밀란과 인터 밀란은 원래 한 팀이었으나 갈등 끝에 갈라졌다. 원래 AC 밀란은 영국인들이 세운 팀이었는데, 이탈리아 선수만 고집하려는 파와 외국인 선수에게도 개방하자는 파가 싸웠고, 후자가 독립해 나간 팀이 바로 '인테르나치오날레(국제적인)'다.
135. 마크 휴즈는 같은 날 웨일스 국가대표팀 경기와 바리에른 뮌헨 경기를 모두 소화했다. 1987년 당시 뮌헨의 울리 회네스 회장이 마크 휴즈를 위해 정오에는 국대 경기를, 저녁에는 뮌헨 경기를 뛸 수 있도록 모든 비행 일정과 수단을 수복해버린 덕분이었다.
136. 데이비드 베컴은 '윕스 크로스(Whipps Cross)' 병원에서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병원 이름에 '크로스'가 들어가는데, 훗날 그가 세계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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