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애슬레틱] 피할 수 없는 ‘왓어바우터리’ 비난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낸 과르디올라를 향한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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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Miller
Feb. 4, 2026 / Updated 2:48 pm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동안 아무도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소 놀란 듯했다.
디 애슬레틱의 샘 리 기자가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언급된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수단 관련 발언을 포착하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지난 10년 동안 기자로부터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답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어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이는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다. 만약 반대편의 입장이었더라도 나는 똑같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는 더 이상 복잡할 것이 없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최근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 요원들에 의해 살해된 르네 굿과 알렉스 프레티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그들은 살해당했고 그중 한 명은 간호사였다. 이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 말해달라”고 비판했다.
로드리의 최근 심판 판정 관련 발언에 답변하던 중 이러한 주제들을 꺼낸 것을 보면, 과르디올라 감독이 의도적으로 질문을 유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계 정세로 화제를 돌리기에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연결이었으나,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언급할 기회를 원했다는 점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난주 과르디올라 감독은 팔레스타인 내 인도주의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단체인 ‘Act X Palestine’이 주최한 바르셀로나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해당 행사 연설에서 “지난 2년 동안 소셜 미디어나 TV를 통해 잔해 속에 묻힌 사실도 모른 채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저 아이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그들을 저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당신들은 어디 있나요? 와서 우리를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하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가 이와 유사한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수여받은 후 진행한 연설에서 그는 “가자 지구의 상황은 매우 고통스럽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관심의 문제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침묵하지 않기로 하는 선택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난 11월에는 카탈루냐와 팔레스타인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를 홍보하며, 이를 “가자 지구에서 살해된 4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스포츠인들을 기리기 위한 연대의 외침”이라고 명명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매우 열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인물이기에, 그가 오로지 축구에만 몰두하며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어렴풋이만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그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주기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모습은 언제나 흥미롭다.
다른 사안에 대해 침묵하는 감독들을 비판하는 것은 불공평할 수 있다.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이를 지나치게 비난할 수는 없으며, 충분한 지식이 없는 주제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몰아세우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르디올라의 소신 발언은 찬사받아야 마땅하지만,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며 그가 이런 성격의 발언을 할 때마다 필연적으로 거론되는 문제가 있다. 과르디올라는 결국 아부다비 자본을 위해 일한다는 점이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겠지만, 간결하게 요약하자면 아부다비는 국제 앰네스티 보고서 내용이 꽤 충격적인 국가다.
도덕적 잣대를 지닌 과르디올라가 아부다비 고용주들을 위해 거의10년 동안 기꺼이 일해왔다는 사실은 분명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동안 그의 입지는 사실상 확고했기에, 최종 고용주들의 독재 체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강력한 위치에 있다.
이 문제에 대한 그의 과거 답변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2018년 카탈루냐 독립 지지 노란 리본 착용으로 FA로부터 벌금형을 받았을 당시, 롭 해리스 기자가 아부다비의 민주주의 결여 상황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모든 국가는 스스로 살아가고자 하는 방식을 결정한다”고 답한 바 있다.
자신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없는 사안들에 대해서만 주로 발언하는 것이 도덕적 비겁함이나 불쾌한 이중잣대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일관성 결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일관되지 못하며, 도덕적으로 비겁한 순간을 겪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도덕적 문제를 논하는 것 자체가 차단되어야 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논리들을 과르디올라를 공격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역효과를 낳을 뿐이다. 누군가의 도덕적 일관성 결여를 지적하며 삿대질하는 ‘왓어바우터리(Whataboutery)’는 상대에게 완벽한 도덕적 결백함을 기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혹은 도덕적 일관성이란 이래야 한다는 본인들의 기준을 투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특정 사안에 대해 말하려면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반드시 말해야 한다고 가정하는 식이다. 과르디올라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아니며,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본인이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한다면, 축하할 일이다.
그는 타협을 선택했다. 축구계 정점에서 자신에게 완벽하게 맞춰진 직장을 얻는 대가가 현재의 고용주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마도 이는 평범한 우리보다 더 큰 타협일 수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타협을 하며 살아간다. 당신은 고용주가 하는 모든 일에 만족하는가? 오직 선한 사람에게서만 돈을 받는가? 당신의 삶 모든 것이 엄격하게 도덕률에 의해 지배되는가? 만약 그렇다면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당신의 자격까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
영국 녹색당의 리더인 잭 폴란스키도 최근 자신의 친환경 행보에 대해 논의하던 중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는 최근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채식주의자이며 운전이나 비행기 이용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환경운동가가 되려는 이들이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추지 않았다고 해서 위선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폴란스키 발언의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핵심 메시지는 동일하다. 도덕적 사안에 관심을 갖거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반드시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결백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래야만 한다면 그 누구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맞아, 하지만...!” 식의 반론이 거두는 유일한 성과란 과르디올라가 제기한 실제 문제들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것뿐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완벽한 사회는 없으며 나도,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더 나은 곳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르디올라가 아부다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낸다면 더 좋았을 것이고, 바람직하며, 심지어 훌륭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무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팔레스타인, 수단, 그리고 미국 이민세관집행국(ICE)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 외의 문제들이 이러한 행위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https://www.nytimes.com/athletic/7018841/2026/02/04/pep-guardiola-palestine-sudan-ukra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