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애슬레틱] 노팅엄의 포스테코글루 선임 과정과 누누 감독 경질 뒷이야기
작성자 정보
- 육지현58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25 조회
- 목록
본문
공식적으로는 단순한 휴가였다. 그러나 엔지 포스테코글루가 6월 초 그리스에 도착해 여름 내내 머물며 결국 노팅엄 포레스트 감독직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시작했을 때, 그의 계획은 이미 빼곡했다.
휴가 대부분은 아테네 인근에서 보냈다. 그는 해변과 경관으로 유명한 파로스 섬을 방문했고, 이어 크레타 섬으로도 향했다. 크레타는 그의 새 보스 에반겔로스 마리나키스 가문이 교회 종을 제작하던 곳이기도 했다.
포스테코글루가 비행기를 타고 그리스 땅을 밟았을 당시 그는 여전히 토트넘 홋스퍼 감독이었다. 그러나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프리미어리그에서 17위로 시즌을 마치며 강등권 바로 위에 머문 기묘한 시즌 이후, 자신의 거취가 위태롭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감독들이 그렇듯, 그는 인맥 관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 단적인 장면이 6월 4일 밤이다. 토트넘이 그와 결별을 공식 발표하기 이틀 전, 포스테코글루는 아테네 교외 보울리아그메니의 고급 레스토랑 ‘파파이오아누’를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그리스 축구계 인사 2명과 만남을 가졌다.
그중 한 명은 AEK 아테네의 전 스포츠 디렉터 파나요티스 코네였다. 코네는 흰색 티셔츠 차림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포스테코글루와 와인잔을 부딪쳤고, 에게해를 배경으로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사람들의 이목을 끈 인물은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난 다른 사람이었다.
야니스 파파도풀로스는 그리스 축구계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그는 AEK와 인연을 맺고 있었으며, 한때는 올림피아코스와 그 자매 구단인 노팅엄 포레스트를 이끄는 마리나키스 제국의 ‘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AEK에 새 구단주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여름 동안 관계가 새롭게 형성됐고, 그는 먼저 마리나키스 체제의 ‘친구’로, 이후에는 잠재적 협력자로 자리 잡게 됐다. 포스테코글루에게는 이 과정이 절묘한 시기에 맞물렸다. 바로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와 포레스트 구단주 사이의 관계가 급격히 흔들리던 때였다.
그 만남이 있은 지 5주 후, 아테네에서 태어나 5살 때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주한 포스테코글루는 다시 보울리아그메니를 찾았다. 이번에는 2025-26 그리스 수퍼리그 개막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그는 특별 초청 손님으로 무대에 올랐고, 마리나키스는 연설을 통해 그를 치하했다.
2025-26 그리스 수퍼리그 시즌 행사에서의 포스테코글루와 마리나키스
마리나키스는 “엔지는 여러 차례 그리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의 뿌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외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는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던 팀을 이끌고 유로파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성공으로 그는 그리스를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훌륭한 감독이며, 어디서든 계속 성공을 거두고 그리스를 빛낼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테코글루는 무대에 올라 직접 그리스어로 연설을 했고, 수퍼리그 회장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흥미롭게도 그 회장은 마리나키스였다.
이 같은 배경을 고려하면, 누누가 시즌 개막 전부터 이미 포스테코글루가 자신의 후임으로 내정됐다고 확신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누누 측근들은 디 애슬레틱에 익명을 전제로 “그는 한 달 전부터 이미 결정이 내려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물론 누누 측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말할 일은 없을 것이다. 축구계의 생리를 잘 아는 그는, 자신 역시 스티브 쿠퍼 퇴진 전 포레스트의 차기 감독으로 낙점됐던 경험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축구계 어디서나 일어난다. 다만 누누는 2019년 마틴 오닐이 당한 굴욕은 피했다. 당시 오닐 경질 발표가 나온 지 불과 18분 만에 사브리 라무시의 선임이 공식화됐기 때문이다.
누누는 불과 몇 시간 만에 포스테코글루에게 포레스트 지휘봉을 넘겼다
누누의 판단은 옳았을까. 포레스트 내부 분위기는 이미 심각하게 틀어져 있었다. 8월 22일 금요일 아침, 한 이탈리아 기자가 X(트위터)에 기사를 올리자 일부에서는 이것이 의도적인 ‘내부 방해 공작’일 수 있다는 의심까지 나왔다.
그 보도 내용은 마리나키스가 누누를 경질하고 포스테코글루를 데려오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는 것이었다. 큰 파장을 일으킨 이 소식은 누누에게 최악의 시점에 터졌다. 그날 오후 예정돼 있던 정례 기자회견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조언도 받았다. 하지만 누누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연기가 있으면 불도 있는 법이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도 안다”고 말했다.
이후 드러난 사실은, 포스테코글루 선임은 철저히 마리나키스 주도의 구상이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있었다. 마리나키스는 그를 훌륭한 감독으로 높이 평가했다. 이는 포레스트가 모건 깁스-화이트의 토트넘 이적을 원치 않았던 이유 중 하나로 “포스테코글루가 만든 팀에 합류하는 것은 퇴보”라는 메시지를 내놓았던 구단의 입장과는 모순된 대목이다.
포스테코글루가 셀틱을 지휘하던 시절인 2022년 여름에도 그는 짧은 휴식 기간 동안 아테네 수영장 옆에서 햇살을 즐기며 스티브 쿠퍼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당시 쿠퍼는 포레스트의 프리미어리그 승격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초청을 받은 상태였고, 포스테코글루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 우승을 차지한 직후였다. 두 사람은 모두 같은 매니지먼트사 CAA 베이스 소속이었고, 관련 인사들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하지만 쿠퍼의 결말은 좋지 않았다. 팬들에게는 큰 사랑을 받았지만 구단주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그의 경질 과정은 포레스트와 CAA 베이스의 관계에도 손상을 입힐 뻔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수습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은 질문은, 누누와 올여름 새로 글로벌 풋볼 총괄로 부임한 전 아스날 임원 에두 사이가 사실상 파국 상태로 치닫던 시점에, 마리나키스가 이미 포스테코글루의 ‘가용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적대감은 대부분 누누 쪽에서 비롯됐다. 특히 한 차례 언쟁에서는 그의 거친 태도에 동료들조차 놀랐다고 한다. 애초부터 두 사람은 맞지 않았다. 갈등의 핵심에는 누누가 품었던 의심이 있었다. 에두와 그의 가까운 동맹인 사업가 키아 주라브키안이 자신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마리나키스 체제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고 있었고, 이는 곧 누누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음을 의미했다.
결국 누누는 일련의 인터뷰와 기자회견에서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에두의 업무 방식을 비판하며, 마리나키스와의 관계가 손상됐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이적 업무 진행 방식과 특히 거래가 지연되는 점을 못마땅해했다. 예컨대 그는 입스위치에서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인 3,750만 파운드에 영입한 오마리 허친슨보다 풀럼의 아다마 트라오레를 선호했다. 또 유벤투스에서 임대해 온 더글라스 루이스 영입에도 전적으로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누에게 가장 큰 문제는 자신과 구단주 사이에 새로 임명된 ‘중간 관리자’였다. 그는 첫 대화에서 나온 발언 하나에 크게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에두를 극도로 싫어했다.
디 애슬레틱이 이 갈등의 심각성을 보도했을 때, 많은 팬들은 단순한 말다툼이나 의견 차이, 곧 사라질 소동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아니었다. 손상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였다. 누누는 에두가 훈련장에 오는 것조차 원치 않았다. 두 사람은 말을 섞지 않았고, 누누는 에두의 존재 자체를 못마땅해했다. 실제로 에두는 포레스트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권한을 갖고 있어 클럽에 자주 있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마리나키스 역시 누누의 발언을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구단주의 막대한 투자 배경을 고려하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로 인해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이미 누누의 입지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브렌트포드를 3-1로 꺾으며 분위기가 잠시 누그러지긴 했지만, 문제 해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림자는 여전히 드리워져 있었다. 일부 팬들은 누누가 유로파리그 명단에서 허친슨과 이적 마감일에 아스날에서 영입한 올렉산드르 진첸코를 제외했을 때, 구단주에 대한 일종의 ‘항명’이 아니냐고 의심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니콜라스 도밍게스가 11월까지 부상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복귀가 임박해 있었고, 이 때문에 그는 진첸코 대신 명단에 포함됐다. 허친슨은 단순히 윙어 자리에 4명을 넣을 수 없었기 때문에 빠진 것이었다.
결국 누누는 유로파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지휘하지 못하게 됐다. 주말 사이 논의가 급진전되면서 포스테코글루가 빠르게 합의를 받아들였고, 마리나키스와의 관계는 단순한 친분을 넘어 실질적 협력 관계로 격상됐다.
에두의 반응도 마리나키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누누가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에두는 이를 불필요하고 도발적인 행위로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 포레스트 내부가 혼란에 빠져 있다는 ‘잘못된 서사’를 만들었다고 봤다.
에두의 임명은 7월 7일, 누누가 새 계약에 서명한 지 불과 2주 후 발표됐다. 그는 포레스트가 30년 만에 유럽 무대에 나서는 만큼 긍정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구단 역사상 최고액 선수들이 합류한 시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클럽 고위 관계자들은 누누가 끝내 입장을 누그러뜨리지 않는 데 당혹스러워했다.
상징적인 장면은 8월 29일 모나코에서 열린 유로파리그 조 추첨식이었다. 이날 에두는 마리나키스, 주라브키안, 리나 술루코우 CEO와 함께 행사에 참석했지만, 여전히 누누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로부터 5일 전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1-1 무) 현장에도 에두가 있었지만, 경기 후에도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대화다운 대화는 끝내 한 번도 없었다.
에두는 팰리스전 현장에 참석했으나 누누와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 점에서 누누는 불리하게도 마르코 실바와 비교되기도 했다. 풀럼 감독인 실바는 과거 올림피아코스를 이끌며 마리나키스 체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대표팀 휴식기 직전 열린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0-3으로 패한 것도 누누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내부 논의가 이어졌고, 결정이 내려지자 곧바로 누누와 그의 에이전트 조르제 멘데스에게 통보됐다. 누누에게는 상당한 퇴직금이 지급될 예정이지만 정확한 액수는 법적 절차에 맡겨졌다.
8월 31일 웨스트햄에 0-3으로 패한 포레스트
선수단 입장에서는 아마 이것이 포스테코글루의 데뷔전인 아스날전 준비를 앞두고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축구 선수들은 감독 교체에 익숙하고, 지난해 12월 쿠퍼가 물러나고 누누가 부임했을 때처럼 금세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누누가 라커룸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이 퍼포먼스 팟캐스트에서 주장 라이언 예이츠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감독을 극찬하는 장면을 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맨체스터 시티를 꺾은 뒤 윌리 볼리와 함께 춤추던 영상이나, FA컵 8강전에서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을 제압한 후 올라 아이나를 업고 그라운드를 달리던 모습도 기억할 수 있다.
그 순간들은 특별했고, 많은 선수들에게 누누는 삶에서 중요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이번 결별은 큰 동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일이 대부분의 선수들이 대표팀 차출로 자리를 비운 A매치 휴식기에 일어나면서 집단적으로 작별 인사를 하거나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 대신, 포스테코글루는 일요일 그리스에서의 긴 여름을 마무리하고 영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포레스트 훈련장에서의 첫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누누의 경질은 화요일 새벽 0시 15분, 단 3문장의 성명으로 발표됐다. 그리고 정확히 13시간 뒤 포스테코글루의 선임이 공식화됐다. 노팅엄 포레스트에서는 결코 지루할 틈이 없다.
https://www.nytimes.com/athletic/6613075/2025/09/10/nuno-postecoglou-nottingham-forest-marinak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