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카]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그리고 더는 버티지 못한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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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카]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그리고 더는 버티지 못한 심판

1962년 2월 21일, 레알 마드리드는 유러피언컵 8강 2차전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차마르틴(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1차전 원정 1-0 승리의 우위를 지키려 했다. 이 대회 초창기 5연속 우승을 이룬 마드리드에게 홈은 언제나 철옹성이었고, 당시까지 홈에서 치른 20경기 중 단 한 번만 무승부를 기록했을 뿐이었다. 그 유일한 무승부는 전 시즌 바르셀로나와의 2-2 경기였고, 2차전 원정에서 1-2로 지며 심판 판정 논란 속 탈락한 바 있다.
 
하지만 유벤투스는 오마르 시보리의 골로 처음으로 마드리드의 성역을 무너뜨리며 1-0 승리를 거뒀고, 결국 재경기를 파리에서 치르게 했다. 이 경기에서 마드리드가 3-1로 승리하며 준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이 경기의 뒷이야기에는 프랑스 최고의 심판 중 하나였던 모리스 기그(Maurice Alexandre Guigue)의 은퇴가 숨어 있다. 그는 1958년 월드컵 결승(브라질의 첫 우승과 펠레의 등장)을 담당했던 인물이지만, 이 마드리드-유벤투스전이 그에게는 국제 심판으로서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당일 유벤투스는 전부 검정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고, 심판은 이에 맞춰 밝은 보라색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전반이 끝난 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검정색 반바지가 혼란을 준다고 강하게 항의했고, 심판은 마드리드의 세컨드킷인 보라색 반바지로 교체해야 했다. 기그는 훗날 이 일화를 “아주 조이는, 아주 예쁜 바지였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하지만 경기 후 마드리드는 웃을 수 없었다. 디 스테파노는 “심판이 피아트를 선물 받을 것”이라며, 푸스카스에게 주어지지 않은 페널티킥 두 건에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1962년엔 심판들이 경기 후 인터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기그는 기자들의 공격적인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이 경기를 이야기하려면 불쾌한 얘기들이 너무 많다. 그냥 이쯤에서 그만하자.”
“당신의 판정에 만족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나는 만족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닌 것 같다”라고 답했다.
“페널티킥을 놓쳤다는 지적이 있는데요?”라는 질문에는 “난 아무것도 놓친 게 없다. 봤다면 불었을 것이다. 그게 더 편했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기그는 마르세유로 돌아갔고, 유벤투스 역시 거칠고 폭력적인 마드리드의 플레이를 용인한 그를 비판했다. 결국 50세 생일을 앞두고 그는 프랑스축구협회(FFF)에 사임서를 제출했다. 이 소식을 접한 코리에레 델라 세라(이탈리아 일간지)는 그를 찾아가 인터뷰했고, 그는 “나는 단지 다음 경기 심판으로 선택되지 않아서 삐진 게 아니라, 더 근본적인, 윤리적 이유 때문에 사임한 거다”라고 설명했다.
 
“매우 지쳤다. 기자들이 이번엔 옳았다. 난 잘못 심판했다. 내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마드리드 선수들에게 더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었냐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짧게 말한 뒤, “다시 심판을 맡는다면 더 단호하게 하겠다”고 확신을 드러냈다.
 
그는 몇 주 뒤 사임을 철회했지만, 다시는 국제 심판 무대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1959년에도 아내의 반대로 심판 은퇴를 고려한 바 있었고, 이후에는 프랑스 중앙 심판 위원회에서 1984년까지 활동했다. 그는 프랑스 역사상 월드컵 결승을 맡은 두 명의 심판 중 하나이며, 2011년 2월 27일, 마르세유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지휘한 유명 경기 중에는 1956년 11월, 비엔나에서 열린 라피드 빈과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3-1)도 있다. 그날 마드리드는 전반에만 세 골을 허용했고, 분노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하프타임에 직접 라커룸으로 내려간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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