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후! 재팬] [김명욱] J1리그 대신 “조선학교”를 선택하다 - 조선대학교 축구부의 “첫” 일본인 감독 후지시로 류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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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든팜주인이올시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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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야후! 재팬] [김명욱] J1리그 대신 “조선학교”를 선택하다 - 조선대학교 축구부의 “첫” 일본인 감독 후지시로 류스케

*일러두기*

- 조선대학교 : 조총련이 운영하는 도쿄의 대학교. 학생 대다수가 조선학교를 졸업 후 진학하였으며, 대한민국 국적, 북한 국적, 일본 국적, 조선적(籍) 등 다양한 정체성의 재일 코리안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음.

- 재일 코리안 : 재일 한국·조선인에 대해 남·북한 중 특정 측의 관점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주로 일본 학계에서 사용하는 용어

- '한국어', '북한'에 대해 원문 그대로 '조선어(朝鮮語)', '북조선(北朝鮮)'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음.

 

https://news.yahoo.co.jp/expert/articles/4c38fbae7c5c4e061683aa6dce6d0b8a2b6b1c97

 

도쿄도 코다이라시에 있는 조선대학교. 재일 코리안의 자제들이 배우는 이 대학 축구장에 한 일본인 감독이 서 있다.

후지시로 류스케, 52세. 2024년부터 조선대학교 축구부의 지휘를 맡는, 조선대학교 대학 축구부 사상 첫 일본인 감독이다.

 

훈련이 시작되자, 후지시로는 선수들에게 조선어로 말을 건다. 일본어가 섞이는 장면은 거의 없다.

「일본인이니까 조선말을 쓴다는 감각은 없어요. 여기서 지도한다면, 선수들의 말로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들이 조선어로 지도하며 조선대학교 피치에 선다. 일본 사회에 있어서, 그것은 결코 “당연”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광경 자체가 지금 조선대 축구부의 현 위치를 상징하고 있다.

 

 

■ 취임 2년차, 숫자가 나타내는 현 위치

취임 2년차인 후지시로 감독이 이끄는 조선대학교 축구부는 현재 간토 대학 사커리그 도쿄/가나가와 1부(간토대학 1부・2부리그의 하위 카테고리)에 소속되어 있다.

1년차인 2024년 시즌은 22경기를 치러 8승 4무 10패, 승점 28로 7위. 이어진 2025년 시즌은 6승 2무 14패, 승점 20으로 9위였다. 숫자만 놓고 보면 후퇴한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결과만 보면 그렇게 보일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안에서는 『지금 무엇을 깎아내고, 무엇을 쌓아 올리고 있는 단계인가』는 분명합니다.」

조선대학교 축구부가 내세우는 목표는 당연히 간토 대학리그 승격이다. 무엇보다, 조선대 축구부는 결코 “무명의 도전자”가 아니다.

 

 

■ 간토리그에서 싸워 온 역사와 J리거의 계보

조선대학교 축구부는 2001년에 간토리그 및 전국 대회(천황배, 국민체육대회 제외)의 참가가 인정되었다. 2007년에는 도 리그 1부에서 2위가 되어, 간토 대학 축구 대회에서 준우승. 다음 해인 2008년에는, 1960년 창부 이래, 처음으로 간토리그 승격을 완수한다. 같은 해에도 승승장구해, 5위(부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1부 승격은 놓쳤지만, 그 시즌은 J리그 클럽의 스카우트진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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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를 졸업 후,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한 정대세


실제로 이 대학 축구부 졸업생 중 J리거도 적지 않다. 가장 유명한 사람이 졸업 후 카와사키 프론탈레에 가입한 정대세다. 시미즈 에스펄스, 알비렉스 니가타, FC 마치다 젤비아 등에서 활약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GK 박일규도 조선대 출신 중 한 명이다. J3의 FC 류큐에서 우승을 경험하고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이적. 사간 토스에서도 주전으로 뛰며, J리그 굴지의 골키퍼로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시즌엔 DF 리태하가 로아소 쿠마모토에 가입. J리그 무대에 다시 조대 졸업생의 이름이 새겨지게 되었다.(https://www.fmkorea.com/9302713510)

다만, 실력자가 모이는 간토 대학 1부 리그의 벽은 높다. 조선대는 간토 대학 2부리그 잔류(2014년에는 도리그 강등)가 계속되면서 2017년을 마지막으로 간토 대학리그 승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재일 코리안 감독」이 통례였던 이유

지도자의 계보에도 오래 지속된 전제가 있었다. 그동안 조선대학교 축구부 감독은 재일조선축구단(1999년 해체) 출신 등 재일 코리안 지도자가 맡는 게 일반적이었다.

최근에는 전 북한 대표 김광호, 김종성 같은 인물이 지휘를 맡아 왔다. 김종성은 J리그의 카고시마, 톳토리, 류큐를 이끌며 J3 FC 류큐를 우승, J2승격으로 이끈 실적을 갖고 있다. 재일 코리안의 지도자가 조대를 이끄는 그것이 오랜 통례였다.

하지만 2024년, 이 흐름에 전환기가 온다. 낙점된 인물은 일본인 지도자 후지시로 류스케였다. 그 배경에는, 후지시로 자신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 온 「조선 학교와의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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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GK 박일규도 조선대 축구부 출신이다

■ 테이쿄고등학교에서 품은 위화감이 원점

원점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테이쿄고등학교 축구부에서 뛰던 시절, 도쿄 조선고등학교 축구부와 수차례 연습 경기를 치렀다. 
 
「정말로 강했어요. 하지만, 왜 인터하이(전국고교종합체육대회)나 선수권에 나오지 않는 걸까 하고, 줄곧 의아해 했습니다.」 이유를 선배에게 물어 처음 알게 된 것이 당시의 제도상의 벽이었다.
 
「그때, 『축구의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진학한 르네스학원에서 혹가이도(홋카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의 졸업생과 만나며 재일 코리안의 세계를 알게 된다. 「몰랐던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신선했고, 제 안에서 시야가 트이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더욱 결정적인 계기는 르네스학원 히로시마교에서 감독을 맡고 있던 시절에 찾아온다. 「홋카이도 조선고 축구부를 강하게 만들어 주지 않겠나.」 앞서 언급한 재일 코리안 친구의 이 한마디에 망설였지만, 우선은 학교를 보러 가기로 했다.
 
현지에서 목격한 것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학생들이었다. 「이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다, 라고 순수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주변의 반대 목소리는 많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에 관한 일본의 보도를 통해 형성된 조선학교에 대한 이미지는 결코 좋지 않았다.
 
「9할의 사람이 반대. 여러 사람에게 『제발 가지 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후지시로는 결단했다. 「하지만, 나머지 1할이 찬성이라면 그곳에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조선학교 재직 시절 결혼한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도장 찍기만 하면」이었던 J1리그 클럽행이었지만…

이 선택을 기점으로 후지시로는 혹가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에서 교원으로서, 그리고 축구부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후 18년에 걸쳐 조선학교의 내부에서 선수들과 계속 마주해 왔다. 조선어는 그곳에서 처음부터 배웠다. 그와 동시에 일본 축구계 안에서도 지도자로서의 발걸음을 쌓아 나간다.

일본축구협회(JFA)의 S급 코치 라이선스(24년 10월부터 「JFA Pro 라이선스」로 명칭 변경) 취득을 위해, 교원을 계속하면서 지도자 양성 과정을 공부하며 축구 이론과 실전 양면에서 연마했다. 그리고 2014년 12월에 S급 코치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참고로 전 일본 대표팀 DF이자 현 JFA 회장인 미야모토 츠네야스 씨와 함께 당시 S급 코치 인정을 받았다.

홋카이도의 조선학교를 퇴직한 후인 2015년부터 JFA 아카데미 후쿠시마에서 U-15 감독으로 현장에 섰고, 2019년부터는 홋카이도축구협회에서 FA 코치도 맡았다. 전국에서 모여든 엘리트 선수들을 맡아 「가르치고」 「키우는」 일에 정면으로 마주해 왔다.

그리고 2023년 12월. 후지시로는 홋카이도 FA 코치를 퇴임하고 새로운 무대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었다. 한층 더 위의 카테고리인 J1 클럽의 아카데미 코치 취임이 내정. 「남은 건 도장을 찍는 것뿐」인 상황이었다.

 

image.png [야후! 재팬] [김명욱] J1리그 대신 “조선학교”를 선택하다 - 조선대학교 축구부의 “첫” 일본인 감독 후지시로 류스케
조선대축구부 감독을 맡은 적도 있는 김종성씨. 2018년에는 FC 류큐를 J3 우승으로 이끌었다

■ 전 북조선 대표 J리그 클럽 감독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그 타이밍에, 어떤 인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 북조선 대표이자, J3의 FC 류큐를 우승과 J2 승격으로 이끌었던 김종성이었다. 이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였지만, 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장은 찍었는지」
 
후지시로가 「아직 찍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이렇게 이어졌다고 한다.
 
「찍지 않았다면 아직 계약이 아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조선대 축구부 OB회의 이야기를 들어봐 줄 수 있겠나?」 
 
실은, 후지시로의 마음속에 “조선대학교 축구부”는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홋카이도 조선고에서 감독을 하던 시절, 조선대에서 합동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대세가 있었던 것도 알고 있었고, 흥미로운 선수가 많이 있구나 하는 인상은 있었습니다. 감독을 할 수 있다면 재미있겠다고.」 다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거리감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일본인이니까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 「간토리그 승격에 최소 3년은 걸린다」 제시된 5년 계약

이러한 생각을 품으면서도, 도내에서 조선대 축구부 OB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지시로는 처음부터 솔직하게 전했다.

「나는 이기게만 하는 감독이 아니라, 토대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어 밑바닥부터 끌어올리는 타입입니다. 1, 2년 만에 간토 대학리그에 승격하고 싶다면, 나는 아닙니다. 최소한 3년은 걸립니다.」

그럼에도 제시된 것은, “5년 계약”이었다.

「『5년 동안 해주길 바란다』라는 말을 듣고, “이 사람들은 진심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후지시로는 조선대학교 축구부의 감독 취임을 결단한다. 그러나 왜, J리그 클럽을 거절하고 다시 조선학교의 현장 지도자로 돌아온 것인가―― 거기에는 더욱 “깊은” 이유가 있었다.
 
 
■ 주변의 「또 (조선학교에) 가는 거야?」라는 목소리

「나는 일본인이지만, 지금까지 많은 재일 코리안 분들께 신세를 져 왔습니다. 홋카이도 조선학교에 근무하는 동안에도 S급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게 해주셨는데, 보은이라고나 할까, 은혜를 갚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한 번 더 해야만 한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어 이렇게도 덧붙였다.

「또 하나는, 엄청난 열정을 느꼈습니다. 물론 J1인가 조선대인가를 두고 무척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조선대에 오면, 어느 정도의 “바람”을 스스로 만들 수 있습니다. J1 클럽에 가면 나 자신보다는 팀의 생각이 우선이죠. 내 생각으로 다시 한 번 현장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강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망설임은 없었다. 후지시로가 조선대 감독이 된다는 이야기는 가족은 물론이고, 관계자들에게 퍼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내도 지인들도 『또 (조선학교에) 가는 거야?』라며 (웃음)」

주변의 어이없어하는 듯한 목소리. 하지만 아무도 말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계속해서 도전하는 스타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며, 말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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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에서의 미팅 모습

 

후지시로는 자신의 인생관을 결정하는 데 있어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 결단한 길 속에서, 약간의 후회는 누구나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때, 역시 그곳에 갔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이 싫습니다. 내 인생이니까, 스스로 납득하며 마무리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조선대 감독을 한다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고, 여러 타이밍이 겹쳐 제의가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원해준다면, 감독을 맡는 이상 승부를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최초의 일본인 감독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 2024년 취임 1년 차 「지도자 인생에서 가장 괴로웠다

조선대 축구부 홈페이지에는 「간토리그 승격」이라는 목표가 내걸려 있다. 후지시로의 입장에서 취임 1년 차는 아직 팀을 만드는 단계이기도 했지만, 역시 주변에서는 승리를 요구한다. 이 틈에서 그는 괴로워했다.

「작년은 내 지도자 인생에서 가장 괴로웠던 시기. 팀이 이길 수 없는, 하지만 내 안에서도 문화로서 제대로 뿌리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내 축구를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을 다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온 1년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멘탈이 그곳을 따라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지도를 했으니까요. 멘탈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1년 차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장은 이상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들이닥친 것은 대학 축구의 “현실”이었다.

솔직히 일본 대학 축구의 레벨은 정말 높습니다. 기술뿐만 아니라 스피드, 강도, 판단 속도. 모든 것이 높습니다.」

볼을 점유하고 주도권을 잡는 시간대 자체를 만드는 것은 가능했지만, 경기가 팽팽한 국면, 혹은 흐름이 기운 순간에 일본의 대학 팀들은 가차 없이 이빨을 드러낸다.

톱니바퀴 하나가 어긋나면 그곳에서부터 단숨에 무너집니다. 일본 팀들은 그 빈틈을 절대로 놓쳐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2년 차인 올해는 지향하는 패스 축구가 일정한 형태를 보여주었다. 공을 움직여 전진하는 부분까지는 어느 정도 통했습니다. 하고 싶은 형태대로 경기에 들어가는 감각도 있었습니다.」

이른 봄 5라운드까지 3승 1무 1패. 좋은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기고 있을 때는 좋다. 문제는 잘 풀리지 않는 시간대」라고 회상한다.

실점하고, 판정에 불만이 나온 뒤, 연속해서 위기를 맞았을 때. 그럴 때 얼마나 참아낼 수 있는가. 그 점이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 오쿠타마의 강물에 발을 담그고 내린 하나의 결론

5~6월에 개최된 6라운드부터 14라운드까지의 9경기에서 1승 1무 7패의 패전 기록. 후지시로는 패인을 전술에서만 찾지 않았다.

「올해는 멘탈부터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확실하게 선수들에게 주입해 나갔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안에는 “게임 퀄리티”, “멘탈”, 그리고 “게임을 읽는 힘”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이 상대보다 우위에 있지 않는 한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1년 차에는 퀄리티를 철저히 했고 올해는 멘탈에 들어갔지만, 선수들에게 좀처럼 말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열정적인 타입”이라고 자부하는 후지시로는 "멘탈을 굉장히 중요시한다"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역시 잘 풀리지 않았다. 그것은 왜일까――. 자문하는 날마다 「설마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무척 고민해서 히키코모리처럼 약간 우울증 비슷하게 되기도 했어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름 전에는 사람을 만나기 싫어지고 전화도 받기 싫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데도 활자조차 읽기 싫더군요. 혼자 오쿠타마(도쿄 서부의 등산 관광지 - 역주)에 가서 강물에 발을 담그고 멍하니 있었죠. 어떻게든 스스로 소화해 냈지만 괴로웠습니다.」

지도자 특유의 고민이기도 하지만, 고민 끝에 하나의 결론이 나왔다.

「다시 한번 재검토하자고 생각한 것은, 조선대가 전원 기숙사제이므로 그곳에서의 선수들의 일상생활. 그리고 이 축구부가 내걸고 있는 슬로건인 『PRIDE OF KORE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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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이기게만 하는 감독이 아니라, 토대를 만들어 문화를 만들어 내려간다」를 신상으로 하고 있다.

 

■ 전원 기숙사제인 조선대에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할 수 있는가

조선대학교는 일본에 있는 대학 중에서는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좋을 「전원 기숙사제」를 채택하고 있다. 학내에 기숙사가 있으며, 학생들은 그곳에서 생활하며 대학 생활을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내의 다양한 시설과 비품은 학생들의 사생활과 함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숙사 생활이라면, 예를 들어 방이 잘 정리정돈되어 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인의 성격도 어우러져 생활 스타일에 개인차가 나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후지시로가 마주한 것은 승패 이상의 「일상」이었다.

「강한 팀은 시설이 낡았어도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현장을 보아왔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어느 팀에서나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이라고 전제하며 이렇게 이어나갔다.

「예를 들어 체육관 앞의 신발이 벗겨진 채 방치되어 있거나, 운동장 주변에 스파이크나 셔츠가 그대로 놓여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 후배 상관없이 운동장 정비나 준비를 솔선수범해서 하는 것. 그것을 할 수 있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는 축구 플레이의 질이나 의식도 크게 달라진다고 역설한다.

성인이기도 한 대학생에게 일일이 물을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해 갈 수 없습니다. 결국은 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선수들도 알아주었으면 해서 그런 점들도 전달하고 있습니다」라며 교육자로서의 얼굴을 내비친다.


■ 조선대 그라운드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상대팀, 「왜?」

후지시로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것은 말해도 좋을지 어떨지 망설여졌습니다만, 들어주시겠습니까?」라고 말을 꺼냈다.

「조선대 운동장에서 열린 어떤 대학과의 경기에서, 상대 대학의 후보 선수가 운동장 구석에서 노상방뇨를 하고 있는 것을 조선대 선수가 발견했습니다. 다른 회장에 있었던 저는 부장으로부터 그 보고를 받았습니다. 역시나 놀랐지요. 나중에 상대 감독으로부터 사죄 전화가 왔습니다만, 왜 선수들이 이런 행동을 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라는 이야기로 이렇게 이어갔다.

「어쩌면 『조선대니까 괜찮겠지』라며 “자이니치(在日)”를 아래로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라고도 생각했지요. 아직 그런 일본 학생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슬퍼지기는 했습니다.」

이른바 재일 코리안이 안고 있는 “차별적”인 피해자 의식이기도 하지만, 후지시로는 그 화살을 그러한 시선에만 돌리지 않는다.

「사회 탓으로 돌리는 것은 간단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쪽 측에도 아직 “빈틈”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인사, 피치에서의 태도, 용모의 정리, 더 시설을 깨끗하게 쓰고 항상 청결히 한다면 상대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가령 도쿄대 그라운드에서 그런 짓을 하는 선수가 있습니까? 대학에도 전통이나 브랜드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을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즉, 그러한 부분을 찔리고 있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일상부터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팀으로서의 규율이나 기준을 이런 부분부터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이 발전으로 이어진다.

그저 축구 지도만 하고 있다면 이런 시각을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일본인인 후지시로이기에 가능한 시선이라고도 느껴졌다.


■ 「프라이드 오브 코리아」란 무엇인가를 추구

2026년은 3년 차 시즌을 맞이한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물론 비판이 나올 것은 후지시로 자신도 알고 있다.

「일본인 지도자가 어떻다느니 하는 말을 들을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생각되든 상관없습니다만, 단 절대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것은 『선수를 상처 입히는 것』입니다.」

감독으로서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스탠스다. 그리고 2026년, 후지시로가 목표로 하는 것은 단순한 “간토리그 승격”이 아니다. 일상의 자세나 태도를 통해 이 부의 슬로건이기도 한 「코리아의 프라이드」를 다시 한번 생활 속에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 붉은 걸개를 보세요. 조선대에 와서 가장 감동한 것이 이 『PRIDE OF KOREA』입니다. 그야말로 『이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동포나 조선학교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싸운다는 것이죠. 이 이념을 향해 싸운다. 그렇다면 “코리아의 프라이드”란 무엇인가. 일본인인 제가 선수들에게 『자부심을 가져라』라고 말해도 이것은 무리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작은 것부터 쌓아 올리고 끝까지 파고들기에 내가 살아온 인생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법.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지지 않는다”라는 자세를 구축해 나가는 것입니다. 결과는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기준이 서 있지 않으면, 경기에서 이겨도 다시 무너집니다. 그것이 조선대의 강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취임 3년 차가 되는 2026년. 후지시로의 말에는 토대가 갖추어져 가고 있다는 실감이 배어 나온다.

「올해 3학년들은 모두 할 일을 합니다. 재밌어질 겁니다.」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조선대학교 축구부의 피치에서는 숫자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변화”가 착실히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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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 OF KOREA」 걸개를 보고 감동했다는 후지시로 감독. 취임 3년차를 맞이하는 2026년은 한층 더 성장한 팀의 모습을 보이겠다고 의욕한다.

■ 후지시로 류스케(藤代隆介) / 1973년생, 도쿄도 출신. 명문 테이쿄고등학교 축구부에서 활동한 후, 르네스학원을 거쳐 지도자의 길로. 1998년부터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 축구부 코치, 05년부터 감독에 취임. 18년에 걸쳐 해당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조선어를 습득하고 선수들과 고락을 함께했다. 동시에 일본축구협회(JFA)의 지도자 양성 과정을 밟아, 14년 12월에 JFA 공인 S급 코치 라이선스(24년부터 「JFA Pro 라이선스」)를 취득. 15년부터 JFA 아카데미 후쿠시마 U-15 감독, 19년부터 홋카이도 축구협회 FA 코치도 역임. 2024년, J리그 클럽의 제안을 거절하고 조선대학교 축구부 역사상 첫 일본인 감독으로 취임. 독자적인 인간 교육과 논리적인 전술로 축구부의 재건을 맡고 있다.

 

후지시로 류스케 더 읽기

- 책 <조선인학교의 일본인 교사> 추천사 http://aladin.kr/p/LQQ9I

-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 김명준 감독의 코멘트 https://cine21.com/news/view/?mag_id=42495

 

 

■ 김명욱(金明昱) / 스포츠 라이터, 1977년 7월 27일생. 오사카부 출신의 재일교포 3세. 조선신보 기자 시절 사회, 스포츠, 평양 취재 등 폭넓은 분야에서 집필. 그 후, 편 프로 등을 거쳐 프리 생활로. 북한 축구 대표팀이 2010년 남아공 뭘드컵 출전을 확정한 뒤 대표팀과 관계자를 일본 언론 최초로 평양에서 취재하는 데 성공해 「Number』에 기고. 11년부터는 여자 프로 골프 토너먼트의 취재도 개시해, 한일의 여자 프로와 친교를 깊게 하는 중. 현재는 J리그, ACL, 대표전과 여자골프를 중심으로 주간지, 전문지, 스포츠 전문 사이트 등 다매체에 집필 중.

 

김명욱의 다른 기사

- 가수 김정민의 아들이자 일본 U-17 국가대표 타니 다이치와의 인터뷰 https://www.fmkorea.com/8460300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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